[책마을] 전기차도 100년 전 기술…"꺼진 생각도 다시 보자"

입력 2017-02-23 17:21  

리씽크

스티븐 풀 지음 /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400쪽│2만2000원

19세기 말 런던 거리 달린 전기차
휘발유차에 밀려 사라졌지만 100년 만에 미래형 자동차로 부활
"무에서 유 창조만이 혁신 아냐, 재고·재발견이 신기술 이끌어"



[ 송태형 기자 ]
19세기 말 런던에선 전기차 택시들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시민들은 ‘윙~’ 소리를 내며 달리는 택시들을 ‘벌새(humming bird)’라고 불렀다. 런던 경찰국장은 ‘마차 택시’보다 절반 이하의 공간을 차지하는 ‘벌새’들이 거리의 혼잡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도 전기차 택시들이 손님을 찾아 돌아다녔다. 1900년 미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3만대를 넘었다. 전기차는 휘발유차보다 인기가 많았다. 소음이 덜하고, 오염물질도 덜 배출했다. 20세기는 전기차 시대가 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10여년 뒤 전기차는 서서히 줄더니 마침내 자취를 감췄다.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휘발유값이 급락했고, 헨리 포드는 전기차의 절반 가격에 휘발유차를 내놨다. 휘발유차가 주행거리와 속도, 성능 면에서 전기차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20세기를 주름잡은 건 휘발유차였다.

다시 100여년 뒤 전기차는 거리에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혁신의 아이콘’ 엘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재발견’하면서다. 머스크는 2008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첫 전기차 로드스터를 내놨다. 한 번 충전으로 320㎞를 달릴 수 있는 차였다. 이어 내놓은 모델S는 2015년까지 연평균 5만대 팔렸고, 올 하반기 본격 출시되는 보급형 모델3는 지난해 사전 예약 개시 1주일 만에 32만5000대(140억달러)가 판매됐다.

영국 저술가 스티븐 풀은 《리씽크》에서 제때를 만난 아이디어들을 폭넓게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 태동한 이 아이디어 중 대부분은 누군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기 전까지는 조롱당하거나 억압받으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재고(再考·rethink)되고 재발견되고 갱신되면서 이제 현대 기술, 생물학, 비즈니스이론, 의학, 철학 등 많은 `영역의 첨단에 서 있다.

현대의 전기차는 신기술로 더욱 제품성이 높아진, 뛰어난 아이디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최초의 전기차는 1837년 영국 화학자 로버트 데이비슨이 만들었다.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환경 문제가 부각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머스크는 한때 용도 폐기된 과거 아이디어에 ‘배터리 기술’이란 빠진 조각을 채워 재가공하고 보완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중세와 초기 근대 유럽에선 피를 뽑아내는 사혈(瀉血) 치료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사혈의 주요 도구는 거머리였다. 19세기 모든 질병이 내장의 염증에서 기인한다는 한 의사의 이론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거머리 요법 열풍이 불었다. 색정증(色情症)부터 결핵까지 모든 병에 이상적인 치료법으로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이 동원됐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거머리 요법은 원시적이고 비위생적이며 비과학적인 의학의 혐오스러운 역사로 치부됐다. 그러다가 몇몇 의사가 거머리 요법을 재발견했다. 수술 후 혈액 응고 방지와 혈액 순환, 혈관 재결합에 거머리를 활용해 성공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거머리를 ‘의료기구’로 공식 승인했다. 거머리 요법은 접합 수술, 피부이식, 재건성형 수술에 자주 사용된다.

저자는 오래된 아이디어의 재발견과 개선으로 촉진되는 혁신의 다양한 사례를 살핀다. 그렇다고 16세기 과학혁명 이전에 지식사를 바라보는 지배적 관점이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기계식 시계, 망원경, 나침반, 뉴턴의 중력이론 등 때로는 태양 아래 실로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저자는 다만 뉴턴 이후로 과학적 발견과 기술적 혁신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현재 새로움과 단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지적한다. 혁신은 무조건 독창적이고, 유례가 없으며, 과거로부터 급격한 단절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를 ‘실리콘밸리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그는 “혁신이라는 개념이 이단아 같은 젊은 기업가가 번뜩이는 영감을 토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세상을 바꾸는 식으로 협소해지면 과거를 재고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머스크는 한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한 ‘단절(disrupt)’이란 단어에 대해 “나는 단절을 좋아하지 않으며 기존의 것들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저자는 “창의성은 그동안 간과된 아이디어의 가치를 깨닫는 능력일 수도 있다”며 “재고와 재발견의 기술은 권위, 지식, 판단, 옳고 그름, 생각 자체의 절차에 대한 우리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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